< (윗줄 왼쪽부터) KAIST 박정원 박사, KAIST 김지윤 석사과정생, KAIST 강수민 석사, 한양대학교 오지은 석박통합과정생 (아랫줄 왼쪽부터) UNIST 선우영민 석박통합과정생, KAIST 강기범 교수, 한양대학교 김우희 교수, UNIST 김병조 교수 >

원자 몇 층 두께의 ‘2차원 반도체’는 기존 연산 회로 위에 반도체를 더 쌓아 올려 AI 칩을 더 빠르고 전력 소모가 적게 만들 유망한 소재다. 하지만 반도체가 자라는 과정에서 결정이 여러 곳에 무작위로 생기면 원하는 위치에 고품질 반도체를 만들기 어렵다. 우리 대학 공동연구팀은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는 위치를 미리 정하고 그곳에서 하나의 결정만 자라게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반도체 성장의 ‘출발점’을 설계에 맞춰 제어함으로써 차세대 적층형 반도체 구현에 필요한 핵심 난제를 해결한 성과다.
우리 대학은 신소재공학과 강기범 교수 연구팀이 UNIST(총장 박종래), 한양대학교(총장 이기정), TDS Innovation(공동대표 강기범·모상현) 등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산화물 장벽에서 나오는 화학 성분을 이용해 2차원 반도체 결정이 처음 만들어지는 ‘핵생성’ 위치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새로운 성장 기술을 개발했다고 8일 밝혔다.
< 산소 성분이 결정 생성을 억제하는 ‘에칭 플럭스’로 작용해, 2차원 반도체가 정해진 한 지점에서만 자라기 시작하도록 제어하는 원리의 개념도 >
AI가 답변을 생성하거나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할 때는 연산뿐 아니라 칩 안에서 데이터를 옮기는 데도 시간과 전력이 든다. 연산과 데이터 저장에 필요한 소자들을 수직으로 쌓아 가깝게 배치하면 데이터 이동 거리를 줄여 처리 지연과 전력 소모를 낮출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만들어진 회로 위의 필요한 위치에 고품질 반도체를 직접 형성하는 기술이 중요하다.
이처럼 필요한 표면에 반도체 물질을 얇은 막으로 직접 형성해 소자를 만드는 ‘증착형 반도체’는 적층형 칩을 구현할 유망한 기술이다. 특히 2차원 반도체는 두께가 원자 몇 층에 불과하면서도 반도체의 전기적 성질을 유지해, 소자를 얇게 쌓는 데 유리하다.
문제는 얇은 반도체 막이 자라는 과정에서 결정의 시작 위치가 본래 확률적으로 정해진다는 점이다. ‘결정’은 반도체를 이루는 원자들이 바닥의 타일처럼 일정한 규칙으로 가지런히 배열된 것을 말한다. 여러 곳에서 결정이 제각각 자라 서로 만나면 타일의 이음새 같은 경계가 생기고, 이 경계가 전자의 이동을 방해해 반도체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
기존에도 반도체가 자랄 영역을 미리 정하는 ‘선택성장’ 기술은 있었지만, 그 영역 안에서 정확히 어느 지점에 몇 개의 결정이 처음 생길지까지 제어하기는 어려웠다. 연구팀은 무작위로 일어나던 핵생성을 정해진 위치에서 하나씩 일어나도록 하는 ‘결정론적 핵생성’을 구현했다. 반도체를 키울 ‘자리’에 더해, 그 안에서 처음 자라날 ‘시작점’까지 정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식각 플럭스 매개 단일 중심 핵생성(EF-SCN, Etching Flux-mediated Single-Centered Nucle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핵심은 성장 영역을 둘러싼 산화하프늄(HfO₂)과 같은 산화물 장벽에서 나오는 산소 성분이다. 이 성분은 대표적인 2차원 반도체인 이황화몰리브덴(MoS₂)의 결정핵 형성을 억제하는 ‘식각 플럭스’ 역할을 한다. 식각은 물질을 화학적으로 깎아내거나 제거하는 것을, 플럭스는 특정 성분이 이동·공급되면서 주변의 화학 반응에 영향을 주는 흐름을 뜻한다.
산화물 장벽과 가까운 가장자리에서는 억제 작용이 강하고, 장벽에서 가장 먼 중앙에서는 약해진다. 연구팀은 이 차이를 이용해 중앙의 한 지점에서만 하나의 결정이 자라기 시작하도록 유도했다. 중심에서 시작한 결정이 자라는 동안에도 주변에서 새로운 결정이 생기는 것을 억제해, 하나의 결정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도록 했다.
실험 결과, 총 400개 패턴 가운데 99% 이상에서 정해진 중앙 위치에 하나의 이황화몰리브덴 단결정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단결정은 원자 배열이 하나로 이어진 결정으로, 여러 결정이 만나 생기는 경계를 줄여 고품질 반도체를 만드는 데 유리하다. 연구팀은 나아가 2차원 반도체 위 원하는 부분에만 루테늄(Ru) 금속을 얇게 입히는 데도 성공했고 성장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러한 위치 제어의 원리도 분석했다.
< 기존 선택성장과 EF-SCN의 개념 비교 및 단일 중심 핵생성 대표 결과 기존 선택성장에서는 성장 영역 내부에서 핵생성 위치가 무작위로 나타나거나 여러 개의 핵이 동시에 형성될 수 있다. 반면 연구팀이 개발한 EF-SCN 기술에서는 성장 영역 가장자리의 핵생성이 억제되어 패턴 중앙에서 단 하나의 핵이 형성된다. 아래 실험 이미지에서는 다수의 패턴에서 균일한 단일 중심 핵생성과 단결정 성장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번 성과는 반도체 박막 성장에서 무작위로 정해지던 출발점을 설계 가능한 공정 요소로 바꿨다는 데 의미가 있다. 향후 2차원 반도체를 다른 곳에서 만든 뒤 옮기는 대신, 칩에서 필요한 위치에 직접 고품질 반도체를 성장시키는 제조 기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증착형 반도체는 2030년대 AI 칩의 성능 향상과 저전력 구동을 위해 도입될 것으로 기대되며 향후 적층형 AI 칩에 적용되면 데이터 이동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를 줄여 사용자가 AI의 답변을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하고 데이터센터의 전력 부담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강기범 교수는 “박막 성장에서 결정이 어디서 생길지는 본래 확률적으로 정해지는데, 이번 연구는 그 시작점을 원하는 위치로 제어할 수 있게 했다는 데 핵심적인 의미가 있다”며 “이는 고품질 2차원 반도체를 필요한 곳에 직접 성장시켜, 반도체 소자를 수직으로 쌓는 적층형 채널 공정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 제1저자인 박정원 박사는 “2차원 반도체는 주변의 작은 화학적 변화에도 자라기 시작하는 위치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번 연구는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반도체가 자라기 시작할 위치를 원하는 곳으로 조절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신소재공학과 박정원 박사, 김지윤 석사과정 학생, 강수민 석사, 한양대학교 재료화학공학과 오지은 석박통합과정 학생, UNIST 반도체 소재·부품 대학원 선우영민 석박통합과정 학생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 본지에 10월 8일 자로 게재됐다.
※ 논문명: Spatially deterministic nucleation of 2D semiconductors by etching flux, DOI: 10.1038/s41586-026-11095-1
※ 저자정보: 박정원(KAIST, 공동 제1저자), 김지윤(KAIST, 공동 제1저자), 강수민(KAIST, 공동 제1저자), 오지은(한양대학교, 공동 제1저자), 선우영민(UNIST, 공동 제1저자), 강기범(KAIST, 교신저자), 이창수(TDS Innovation, 교신저자), 김우희(한양대학교, 교신저자), 김병조(UNIST, 교신저자), 최성율(KAIST), 양희준(KAIST), 김종환(POSTECH), 홍영준(성균관대학교), 김용주(고려대학교), 김지환(MIT) 등
※ 관련 논문 원문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6-11095-1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연구재단 나노소재기술개발사업·개인기초연구의 지원을 받았으며 추가로 원천기술국제협력개발사업·초고집적 반도체용 vdW 소재 및 공정기술개발사업, 차세대지능형반도체기술개발사업,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연구성과사업화진흥원(COMPA),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중소벤처기업부 및 NVIDIA 등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